shorts33 drawing #3 야밤의 만두 야밤에 배가 너무고파서 만두를 몇개 꺼냈다. 기름을 자작하게 둘러서 자글자글 익혔다. 바삭하고 통통한게 너무 맛있다. 예전 같으면 늦은밤에 기름진걸 왜 먹었나 또 살이나 찌겠군 하고 후회하며 잠들었을텐데, 지금은 그저 부른 배를 두드리며 좋아라 하고 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온 선택에 대해 스스로 의심하고 채찍질하는 일이 많았다. 이제 스쳐갈 불행을 붙잡고 우느라 눈앞의 행복을 놓치는 실수는 더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뤄낸 것을 기뻐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2021. 9. 15. drawing #2 즉석 우동 보라매역 근처에는 5분만에 나오는 따끈한 우동 한그릇을 4천원에 먹을 수 있는 자그마한 우동 가게가 있다. 겉보기엔 굉장히 허름한데도 항상 사람이 붐빈다. 촌스러운 폰트로 '즉석 우동 짜장' 이라고 적힌 간판은 적어도 20년은 된 것처럼 빛이 바랬고, 내부는 다섯평 남짓으로 열명 정도가 겨우 비좁게 앉을 정도로 협소하다. 미리 준비된 밀가루 반죽을 기계에 넣어 면을 뽑고, 끓는 물에 한소끔 삶아낸 후 건져내 그릇에 담고, 큰 솥에서 퍼올린 뜨거운 육수를 부은 다음 쑥 몇가닥을 올리고, 밥숟가락으로 튀김 가루와 송송 썬 대파, 고춧가루와 김가루를 털어넣으면 완성이다. 반찬으로 단무지와 큼지막히 썰어낸 새콤한 깍두기가 함께 나오는데, 이게 또 참 잘 어울려 별미이다. 처음 그 우동을 먹었을 때를 잊지 못한다.. 2021. 9. 10. 슈퍼 가는 길 집 근처 슈퍼로 이어진 좁은 도보를 좋아한다. 내 느린 걸음으로 5분 남짓 걸리는, 길다면 꽤 긴 길이다. 사진처럼 두 보폭에 하나 정도의 명언이 걸려 있다. 짧은 명언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희한하게도 이 길에 적힌 것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든다. 작은 간식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잠시 흔들리는 마음을 내려놓고 누군가 고심해 골라낸 듯한 이 여남은 문구들을 읽어내고 나면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불안감 보다는 어떤 인생이라도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2021. 9. 9. drawing #1 머리 채색을 고민중 2021. 9. 8. 참 예쁜 오징어 몇년 전 제주도에서 스쿠버 다이빙 중에 살아있는 오징어 한쌍을 보았다. 그전까진 평생 물기 있는 오징어라고는 그릇 위에 있는 것으로 딱 한번 봤는데, 갓 잘린 고통때문인지 온몸의 무늬가 미친듯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바닷속에서 본 오징어는 투명했고 수면 근처에서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 가운데 별처럼 박힌 까만 두 눈이 빛나고 있었다. 느리고 우아한 몸짓이 감히 오징어라는 단어로 부르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그간 물속에서 보았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아마 오징어에 대한 내 선입견 때문이리라. 푸른 시야엔 오로지 오징어 두마리와 내가 내쉰 공기방울들만이 춤추고 있었고, 귓가엔 요란한 숨소리가 이따금 고요를 깼다.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오징어를 홀린듯 바라.. 2021. 9. 7. 더 넘어지려고 해야만 일어설 수 있는 모순 처음 두발 자전거를 타는 법을 배울 때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자전거가 기울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돌려야 몸체가 바로 서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넘어지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려 한다. 하지만 이런 몸부림은 자전거를 더 빨리 넘어지게 할 뿐이다. 놀랍게도 일단 타는 법을 익힌 후에는 아무도 이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 예전에 한 해외 프로그램에서 기존과 반대로 조작해야만 탈 수 있도록 자전거를 개조하는 실험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을 때, 실험자는 평범한 자전거를 타는 법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익숙해진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사실은 잘 알고있던 다른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021. 9. 6. 이전 1 2 3 4 5 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