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년 전 제주도에서 스쿠버 다이빙 중에 살아있는 오징어 한쌍을 보았다.
그전까진 평생 물기 있는 오징어라고는 그릇 위에 있는 것으로 딱 한번 봤는데,
갓 잘린 고통때문인지 온몸의 무늬가 미친듯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바닷속에서 본 오징어는 투명했고 수면 근처에서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 가운데 별처럼 박힌 까만 두 눈이 빛나고 있었다.
느리고 우아한 몸짓이 감히 오징어라는 단어로 부르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그간 물속에서 보았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아마 오징어에 대한 내 선입견 때문이리라.
푸른 시야엔 오로지 오징어 두마리와 내가 내쉰 공기방울들만이 춤추고 있었고,
귓가엔 요란한 숨소리가 이따금 고요를 깼다.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오징어를 홀린듯 바라보고 있었다.
한 순간,
셀수없이 많은 생명을 품은 바다에 대한 경외감이 몰려와 재빨리 벅찬 숨을 몰아쉬었다.
바다는 언제나 그 곳에 있었는데, 내가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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