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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s

어떤 불안

by 계발자 망고 2022. 3. 15.


불현듯 불안이 끼쳐올 때가 있다.
그럴 땐 마음을 가다듬고 카바피의 시를 읽는다.

네가 이타카로 가는 길을 나설 때,
기도하라, 그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라이스트리콘과 카클롭스
포세이돈의 진노를 두려워 마라

네 생각이 고결하고
네 육신과 정신에 숭엄한 감동이 깃들면
그들은 네 길을 가로막지 못하리니
네가 그들을 영혼에 들이지 않고
네 영혼이 그들을 앞세우지 않으면
라이스트리콘과 키클롭스와 사나운 포세이돈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으리

기도하라, 네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
크나큰 즐거움과 크나큰 기쁨을 안고
미지의 항구로 들어설 때까지
네가 맞이할 여름날의 아침은 수없이 많으니
페니키아 시장에서 잠시 길을 멈춰
어여쁜 물건들을 사거라
자개와 산호와 호박과 흑단
온갖 관능적인 향수들을
무엇보다도 향수를,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최대한 이집트의 여러 도시들을 찾아가
현자들에게 배우고 또 배워라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네 목표는 그 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
비록 네 갈 길이 오래더라도
늙어져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이타카 - 콘스탄티누스 카바피


원래부터 내것이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구나 선택한 길 위에서
보고, 듣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삶이 삯 없이 내어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낙담이나 좌절도 책 허리에 쓰일 에피소드가 된다.

이별은 만남이었고
상실은 반납일 뿐이다.

불안은
잃고 싶지 않은 욕심도,
이루지 못할까 드는 근심도 아니다.

가진 자에게 들려오는 노랫소리,
가고자 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나침반이다.
손 안에 많은 것을 쥐고자 하는 여행자가
스스로에게 외치는 다짐같은 것이다.

불안이 우두커니 앉아
어디선가 나를 바라볼 때에는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고
다시 내일의 여정에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다.


라고 생각하며 오늘 밤의 나를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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