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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s

늦봉오리

by 계발자 망고 2022. 5. 24.


야 이 섣부른 인간아,

오온세상 꽃이파리
있는대로 만개할 때
무얼하고 있느냐고
타박, 타박을 하더니

조막만한 꽃봉오리
빳빳하게 세우고서
뭔 고집을 부리냐고
소리, 소리를 하더니

다들 지고 새파랄때
나홀로 발그스름
예쁘게도 피었으니
넋을 놓고 보누나

남들 다 피어
나빌레릴 때

뜨거운 햇살
차가운 빗물
아득한 새벽
싸늘한 눈총

그 모든 수모를 견뎌
그 어느 꽃보다도
귀하게 피었다

조금 늦은 꽃이파리
눈물 겨운 늦봉오리

이리도 크게 피려고
오래도 참았구나
눈부시게 늦었구나
어여쁜 아이야

지난 봄,
내 방 창문 앞에는
유독 봉오리를 굳게 닫은 꽃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벚꽃은 나부끼고 개나리는 뽐내고
꽃이란 꽃들은 전부 피어 나부끼고
바람에 이파리를 나리는 한봄이었다.

그런 꽃난리 속에서도 매일같이
작고 단단한 봉오리들을
어찌나 꼿꼿이 세우고서 견디는지
지독하게 악착같은 것이 못돼보일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나는 그 나무를 매일아침 살피게 되었다.

아니, 그것으로 모자라,
그들이 원하는 대로 피어나길,
꿈대로 깨어나길 간절히 바랬다.

보름정도 기다렸을까

수많은 꽃들이
내 기도처럼
새빨갛게 터져나왔다.

오랜 시간을 견딘 대가일까
더 뽀실하고 예뻐보였다.

다른 모든 꽃들은 지고 수척해진 뒤였다.

꿈꾸는 모든 꽃들이
그들만의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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