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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중년의 동양 여성이

by 계발자 망고 2021. 8. 26.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중년의 동양 여성이 큰 깃털 한가닥을 들고 서 있다.

바닥에는 사람 키만한 나무 막대들이 잔뜩 놓여져 있다.

 

 

고요함.

 

 

여자는 아주 천천히 깃털을 비교적 짧은 막대 끝에 올렸다.

 

다시 그 나무막대를 조금 더 긴 막대 끝에 올렸다.

 

그리고 그 나무막대를 다시 더 긴 막대 끝에 올렸다.

 

마치 느린 춤을 추듯 신중하게, 계속해서 나무를 쌓아올렸다.

 

가녀린 나무 막대들이 작은 입김에도 쓰러질 듯이 위태롭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늘어진 팔뚝에서 세월이 느껴졌다.

동시에 등과 종아리에는 동물과 같은 근육이 자리했다.

작고 강인한 몸이었다.

딱 붙는 드레스가 그런 그녀의 몸뚱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가슴이 빈약한 갈비뼈와 주름진 목은 훤히 드러났고, 가늘지 않은 골반과 다리는 채 감춰지지 않았다.

 

토르소. 정직한 육체의 토르소였다.

 

여자의 눈은 오로지 그것의 균형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하나 하나 막대를 올릴 때마다, 거대한 안정과 위험이 동시에 찾아왔다.

 

마침내 커다란 나무 막대들의 뼈대가 완성되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웅장한 날개처럼 보였다.

 

모든 사람들이 감탄했고, 몇몇은 박수를 쳤지만 혹여 큰 박수소리에 뼈대가 무너질까 조심스러운 듯 보였다.

 

여자는 환하게 웃었다.

너무 환하게 웃는 바람에 고르지 못한 치열과 거뭇한 잇몸까지 드러났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미약한 깃털로부터 시작된, 느리고 작은 움직임이 만든 그 거대한 균형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마치 나무막대가 더 있기라도 했다면 끝없이 세워질 것만 같은 귀납적인 평형,

그리고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위태로움이 동시에 존재했다.

 

 

환희가 잦아든 뒤

여자는 숨을 거두어가는 슬픈 신의 얼굴을 하고

천천히 깃털을 향해 다시 손을 뻗었다.

 

 

깃털이 뼈대를 떠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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