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몇가지 기저질환 외에는 농사일을 계속 하고 계셨을 정도로 정정하신 편이었는데
코로나 백신 2차를 맞고 호흡곤란이 오셔서 한달만에 돌아가셨다.
할머니 할아버지댁은 경상북도의 깊은 산골짜기의 농촌 마을에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일은 자연히 뜸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집의 큰아들이셔서, 엄마가 늦은 나이에 남동생을 낳기 위해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 정도로 유교 사상이 강한 집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내가 여자라는 사실로 단 한번도 차별하신 적이 없다.
제사를 지낼 때는 딸아이들도 모두 한켠에 서서 절을 하도록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주 어릴적에는
모든 친척들이 다 아랫목에 모여서 TV를 보고 있을 때 슬그머니 윗목으로 나만 부르시는 일이 많았다.
나는 츄르를 든 집사를 쫓아가는 고양이처럼 쪼르르 따라가 할아버지 무릎에 앉았고,
그러면 할아버지는 냉동실 구석에 숨겨두셨던 더블 비앙코를 꺼내서 한스푼씩 떠먹여주셨었다.
손주가 나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꼭 나만 그렇게 불러서 맛있는 걸 먹여주시곤 했다.
그 방은 엉덩이가 시릴정도로 윗목이었지만, 내 마음은 가장 아랫목이었던 시간이었다.
아, 할아버지가 나를 사랑해주셨었구나. 하고 이제야 느끼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더 자주 찾아뵐 걸, 하고 후회해도 늦었다.
고작 내 한몸 건사하고 사는게 뭐가 그리 바빴던 걸까?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위독하신 할아버지를 뵈러 병원에 갔었다.
코로나 때문에 병문안도 금지되어 있었지만
같은 방에 계신 환자분들이 배려해주신 덕분에 보호자 딱지를 빌려 몰래 들어가 간신히 뵐 수 있었다.
몇년만이었던 걸까.
부끄러움에 내 머리는 세는 것을 멈추었다.
숨이 차서 열흘 째 잠도 한숨 못주무시고 밥도 한숟갈 못드셨다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흐린 눈동자는 숨을 쉬고 살아있는 것에만 집중하기에도 벅차보였다.
몰라뵙도록 약해지신 모습에 더 이상 온전한 표정으로는 그 방에 있기가 힘들었다.
입관하시기 전 할아버지의 손을 잡을 기회가 있었다.
금방이라도 내 손을 잡고 그래 잘하고 있다 라고 해주실 것만 같았다.
그 때 살면서 처음으로 아버지께서 아이처럼 우는 모습을 보았다.
내 마음에서도 정신없이 울음이 터져나왔다.
보잘 것 없는 망각의 동물, 인간인 나는 아마 같은 실수를 반복할게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내게 한번 더 일러주신 이 마음으로,
가족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아갈 기회를 얻었다.
풀과 열매를 길러내어 아들 딸을 보살피시는데 한평생을 바치신
성인이시자 지혜로운 이 땅의 아버지시여.
좋은 곳으로 가셨으리라고 틀림없이 믿습니다.
이제 그 곳에서는 편한 숨 들이쉬시며 극락왕생 하소서.
사랑해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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